CEO 칭기스칸, 유목민에게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 / 김종래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폄


Diversity가 지속적인 발전가능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원동력이라는 생각의 연장선 상에서

 

P18. …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지언정 진실은 아니다. 인류사가 자랑해온 4대 문명 발상지는 정확한 용어로 다시 표현하면 4대 정착 문명 발상지라 해야 옳다. 4대 정착문명 거점들은 자연 환경과 역사 경험에 따라 매우 다른 개성들을 지니기도 하지만 상당히 공통된 특성도 보인다. 예를 들어 하나 같이 물가에서 출현했고, 식물을 중심에 두고 사고했으며, 오직 씨를 뿌려 거두기를 삶의 기본이자 세상의 표본적 질서로 여겼다. 그렇게 해서 성을 쌓고 울타리를 늘리며 관료제를 발달시켰으며, 공간 이동을 꺼렸다.

농경 정착민들의 우선 관심 대상은 경잘할 토지와 비를 내려줄 하늘이다. 옆을 볼 필요 없이, (하늘)와 아래()을 봐야 한다. 정착민들은 한 자리에 붙박혀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해결한다. 이웃 사람, 이웃 마을, 이웃 나라와 교류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만큼 폐쇄적이다. 세상 넓은 것도 알지 못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소유 의식이 강해지고 관료제가 발달한다. 천자와 왕을 대신하는 관리가 나서서 사람들 사이 분쟁을 해결하고 세금을 징수하며 행정을 편다. 정착사회느닝처럼 수직 마인드를 기초로 삼게 된다. 잘만 운영하면 모든 것을 평생 보장하는 종신형 사회이자, 식물형 사회이며, 수직 사회다.

그러나 그 사회가 자기 정화력과 절제력을 잃어버릴 경우 온갖 폐해를 드러낸다. 제도피로 현상이다. 사람과 사람사이를 가로막는 계급과 계층들이 먹이 사슬처럼 생겨난다. 위에 있는 사람들은 군림하면서 아래를 착취하려 든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위에 아첨하면서 자기보다 더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군림하고 착취하려 한다. 그러면서 부정과 부패가 창궐한다.

군림과 착취 구조를 가장 확실하게 지켜주는 것이 자리. ‘관리를 연상할 필요도 없다. 길거리 좌판상도 자릿세를 물어야 장사를 할 수 있다. 자리를 차지하고 이권을 지키려고 사람들마다 혈연으로 뭉치고, 지연으로 묶고, 학연으로 얽어 맨다. 그러나 나와 다른 사람들을 거부하고 멸시하며 외면한다. 다른 고장 추린, 다른 학교 출신, 다른 집안 사람, 다른 부처 사람, 다른 나라 사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적과의 동침만큼이나 거북하게 여긴다.

그런 곳에서는 남에 대한 봉사, 효율, 생산성, 투명성 따위가 구호로만 떠돌아 다닌다. 수직 사회에서 창의력 약화는 필연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시키기만하면 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대신 기억력이 존중되고 발달한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기억력이 좋다는 것과 다름없다. 모든 경쟁도 기억력 겨루기가 핵심이다. 기억력을 중시하는 사회는 미래를 사는 게 아니라 과거를 산다. 그런 사회는 허수가 실수를 밀어낸다. 모두 저 잘난 줄 알지만 남이 보기에는 벌거벗은 임금님들의 축제에 불과하다. 자기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게 아니라 천하가 자리를 위해 도는 줄 착각하는 천동설의 신봉자들이 된다. 그런 사회는 닫힌 사회에 그치는게 아니라 아예 갇힌 사회가 된다. 수직적 사고가 낳는 해악들이다.

그에 반해, 유목 이동민들은 항상 옆을 바라 봐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생존하려면 싱싱한 풀이 널린 광활한 초지를 끝없이 찾아 헤매야 한다. 그래서 더 뛰어난 이동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더 좋은 무기로 무장해야 한다. 그들에겐 고향이 없다. 한번 떠나면 그만이다. 초원에는 미리 정해진 주인도 없다. 실력으로만 주인 자리를 겨룰 뿐이다. 지면 재산을 빼앗기고 상대편 노예가 된다. 이기면 재산을 늘리고 노예도 거느릴 수 있다. 노예가 된 사람은 주인을 위해 열심히 싸워 노예를 면하고 새 부족에서 새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기회는 항상 열려있다. 그들은 그렇게 세상을 향해 달려간다.

살기 위해 위가 아니라 옆을 봐야 하는 수평 마인드의 사회, 살기 위해 집단으로 이동해야 하는 사회가 유목사회다. 그 속에선 단 하루도 현실에 안주하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 끝까지 승부 근성을 놓지 않고 도전해야 한다. 그곳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이 소중하다. 민족이, 종교가, 국적이 다르다는 것도 무시해 버려야 한다. 아니 다른 사람일수록 더 끌어들여야 한다. 사방이 트인 초원에서는 동지가 많아야 살아 남고 적이 많으면 죽게 된다.

그런 사회에선 완전 개방이 최상 가치로 통한다. 모든 개인의 개방화는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 그렇게 해서 그 사회는 출신이나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능력에 따라 무한 가능성을 보장하는 사회가 된다. 그 속에선 효율과 정보가 무척 중요하다. 이동과 효율과 정보의 개념 속에서 시스템이 태어난다. 자리는 착취와 군림 수단이 아니라 역할과 기능을 발휘하는 곳이다. 최고 자리에 앉은 사람은 군림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리더다. 그 자리에 누가 앉느냐는 것은 씨족이나 부족의 생사와 직결되는 문제다.

 

P94. 칭기스칸이 추진한 여러 개혁들은 당시 몽골 기득권 세력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것이었다. 당연히 반발이 거셌다. 하지만 칭기스칸은 오갈 데 없는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고 약속했다. 그들 또한 칭기스칸의 미래 청사진을 지지했다. 그래서 개혁은 성공할 수 있었다.